6.25 작전명령 174호 장사상륙작전



 


1950년 9월 10일,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비밀 작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. 나흘 뒤인 9월 15일로 예정된 인천상륙작전을 위한 장사상륙작전이었습니다 [00:00]. 당시 북한군에 의해 낙동강 전선만 남겨둔 위급한 상황에서, 전세를 뒤집기 위한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[00:29].

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[02:58]. 이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정식 군인이 아닌 학도병들이었으며, 이들은 군번 대신 '유격대원증'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[02:15].

작전의 진행 및 결과:

  • 상륙 및 고지 탈환 문산호를 타고 장사리에 상륙한 학도병들은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백포 고지를 향해 돌격했습니다 [03:11]. 작전 개시 12시간 만에 고지 탈환에 성공했지만, 수많은 전우들이 희생되었습니다 [04:26].
  • 보급로 차단 고지를 탈환한 후 학도병들은 북한군의 보급로 역할을 하던 다리를 폭파하고 반대편 고지까지 점령했습니다 [05:44]. 이로 인해 북한군의 관심이 장사리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[06:50].
  • 북한군의 반격과 철수 작전 3일째, 북한군이 전차까지 앞세워 대규모 반격을 시작했고, 학도병들은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[07:02]. 구조선이 도착했지만, 북한군의 공격으로 많은 소년병들이 바다로 떨어지거나 배에 오르지 못하고 남겨지기도 했습니다 [09:07].
  • 인천상륙작전의 성공 장사상륙작전 덕분에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었고, 전세가 완전히 뒤집히면서 북한군은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[12:51].

남겨진 소년병들의 운명:

  • 장사리에 남겨진 약 30여 명의 소년병들은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[11:48]. 이들은 며칠 밤낮을 걸어 끌려가던 중, 인민군 병사들이 잠든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[14:01].
  • 탈출한 소년병들은 남쪽을 향해 달려 국군과 재회했고, 일부는 다시 국군에 합류하여 전투에 나섰습니다 [14:52].
  • 전쟁에 참전했던 소년병들은 1953년 7월, 휴전이 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[15:51].

작전의 숨겨진 진실:

  • 장사상륙작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학도병의 정확한 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. 약 139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지만, 이는 공식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[16:31].
  • 작전에 참여한 총인원 또한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[16:56].
  • 전사자들의 유해는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으며, 1997년부터 시작된 유해 발굴 작업은 2022년까지도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[17:32].
  • 현재 생존해 있는 장사상륙작전 참전 학도병들은 90대로, 20명 미만이며, 희생된 동료들의 유해를 찾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[19:00]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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